소프트웨어의 가격표는 보통 글 맨 끝에 작은 글씨로 붙는다. 그런데 에이전트 소프트웨어에서는 이 가격표를 제품 설계보다 먼저 꺼내야 할 때가 있다.
상황 하나로 시작해 보자. 어제까지 담당자 셋이 나눠 하던 일을, 오늘은 담당자 한 명과 에이전트가 함께 처리한다. 그러면 이 소프트웨어를 판 회사는 누구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를 받아야 할까. 사람 수대로? 처리한 일의 양대로? 실제로 끝난 결과대로? 답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곧 "우리는 무엇을 파는 회사인가"를 결정한다. 이 글은 특정 회사의 요금이 얼마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과금의 '단위'가 바뀔 때 경쟁의 축이 어디로 옮겨가는지를 본다.
전통적인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매달 돈을 내고 쓰는 소프트웨어)의 기본 단위는 '좌석'이다. 좌석 과금이란 그 소프트웨어를 쓰는 사람 머릿수대로 돈을 받는 방식이다. 협업 도구를 20명이 쓰면 20인분을 낸다. 단순하고, 사는 쪽도 파는 쪽도 계산이 쉽다.
이 방식이 오래 버틴 이유는 하나다. 소프트웨어가 사람의 손을 '거드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하는 주체는 사람이고, 소프트웨어는 그 옆에 놓인 연장이었다. 연장을 쥔 손이 몇 개냐로 값을 매기는 건 자연스럽다.
에이전트에서는 이 전제가 깨진다. 에이전트란 사람이 시킨 목표를 받아, 여러 단계를 스스로 밟아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다. 메일을 읽고, 일정을 비교하고, 재고를 조회하고, 초안을 쓰고, 승인만 사람에게 올린다. 손을 거드는 게 아니라 손의 일부를 대신한다.
그러면 질문이 생긴다. 이 에이전트의 '좌석'은 누구인가. 에이전트 자신인가, 그것을 감독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이 처리한 건수인가. 한 명이 에이전트 다섯을 돌리면 한 좌석인가 다섯 좌석인가. 반대로 에이전트가 야간에 사람 없이 일을 끝내면, 그 시간의 좌석은 몇 개인가. 단위가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좌석이라는 자(尺)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자. 과금 단위를 바꾸면 회사가 책임지는 범위가 바뀌고, 책임 범위가 바뀌면 만들어야 하는 제품이 바뀐다. 그래서 과금은 마케팅 담당자가 마지막에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제품의 방향을 먼저 정하는 설계다.
지금 시장에서 섞여 쓰이는 방식은 크게 셋이다. 각 방식이 공급사에게 어떤 압력을 주는지, 그 압력이 무엇에 막히는지를 함께 보자.
사는 쪽은 예산을 짜기 쉽다. 이달에 25명이 쓰면 25인분, 끝이다. 변동이 없으니 재무팀이 좋아하고, 파는 쪽도 매출 예측이 쉽다.
문제는 에이전트가 지향하는 바와 과금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에이전트는 '사람이 덜 매달려도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런데 좌석 과금은 사람이 많이 붙을수록 돈을 더 받는다. 고객이 에이전트를 잘 써서 담당자를 셋에서 하나로 줄이면, 공급사 매출은 오히려 줄어든다. 고객의 성공이 공급사의 손해가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공급사는 알림을 늘리고 대시보드를 화려하게 꾸며 사람이 매일 열어 보게 만들려는 유혹을 받는다. 자동화를 판다면서 자동화가 덜 되는 쪽으로 힘이 실린다. (이 유혹을 완전히 막아 주는 건 없지만, 고객이 "로그인만 자주 시키는 제품"에 질려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제동을 건다.)
처리한 양대로 받는 방식이다. 처리한 건수, 또는 토큰(대규모 언어 모델—사람의 말을 처리하는 AI—이 글을 잘게 나눠 세는 단위, 대략 단어 조각 하나) 양으로 매긴다. 많이 쓰면 많이 낸다. 가치와 과금의 거리가 좌석보다 가깝다.
막히는 지점은 두 곳이다. 첫째, 고객이 불안해한다. 이달 청구서가 얼마 나올지 미리 알 수 없다. 에이전트가 어쩌다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돌면 비용이 튄다. 예산을 못 박아야 하는 조직에는 이 불확실성 자체가 구매를 막는다. 둘째, 공급사에게 '많이 처리할수록 이득'이라는 묘한 유인이 생긴다. 한 번에 끝낼 일을 세 단계로 쪼개도 공급사는 손해가 아니다. 효율을 높일 이유가 약해진다.
일이 실제로 끝났을 때만, 혹은 끝난 만큼 받는 방식이다. 처리된 민원 한 건당, 예약이 확정된 건당, 회수된 미수금의 일정 비율. 겉보기엔 가장 공정하다. 고객은 결과에만 돈을 내고, 공급사는 결과를 내야만 돈을 받으니 두 이해가 같은 방향을 본다.
그래서 성과 과금은 공급사에게 '끝까지 책임지라'는 압력을 준다. 다만 이 압력이 곧바로 '끝까지 책임지는 제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다음에 볼 세 가지 벽 때문이다. 오히려 같은 압력이, 공급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밀기도 한다.
성과를 세려면 먼저 셀 수 있게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현장의 일은 깔끔하게 끊기지 않는다.
고객 문의를 처리하는 에이전트를 '해결된 문의 한 건당'으로 과금한다고 하자. 그럼 '해결'은 언제인가. 에이전트가 답을 보냈을 때? 고객이 다시 묻지 않았을 때? 고객이 '해결됨' 버튼을 눌렀을 때? 세 기준은 각각 다른 숫자를 낸다. 고객이 포기하고 떠난 것과 만족해서 떠난 것은, 데이터에서 똑같이 '다시 안 물음'으로 보인다.
기준이 느슨하면 공급사는 쉬운 쪽으로 숫자를 부풀릴 수 있고, 너무 빡빡하면 멀쩡히 한 일도 성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성과 과금의 절반은 '성과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계약서에 또렷이 적는 일이다. 특히 재작업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빠지면, 같은 건을 두고 청구 해석이 매달 갈린다.
결과가 났을 때, 그게 에이전트 덕인지 가려내기가 어렵다.
미수금을 회수하는 에이전트가 있다고 하자. 이달에 5천만 원이 들어왔다. 공급사는 "우리 에이전트가 독촉해서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중 상당액은 에이전트가 아무것도 안 해도 때가 되면 들어올 돈이었을 수 있다. 에이전트가 '추가로' 끌어온 금액만이 진짜 성과인데, 이 둘을 갈라내기가 어렵다.
제대로 재려면 에이전트를 쓴 쪽과 안 쓴 쪽을 나눠 비교하는, 실험에 가까운 설계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고객사는 거기까지 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귀속은 늘 어림짐작이 되고, 공급사는 많이 기여했다 하고 고객은 원래 될 일이었다 하면서 신뢰가 깨진다.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 우리말로 '쉬운 것만 골라 담기'라는 말은, 결과로만 돈을 받게 되면 공급사가 '확실히 성공할 일'만 골라 하고 싶어진다는 뜻이다.
성과 과금 아래서 공급사는 손해를 피하려고, 될 것 같은 건만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건은 슬그머니 사람에게 넘기거나 뒤로 미룬다. 그 결과 '에이전트 성공률 95%' 같은 좋은 숫자가 나온다. 하지만 그 숫자는 쉬운 일만 골라 담은 결과일 뿐, 정작 고객이 자동화하고 싶었던 골치 아픈 일은 그대로 남는다. 고객이 사고 싶었던 건 어려운 일의 처리인데, 과금 구조가 공급사를 쉬운 일 쪽으로 밀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성과 과금을 쓸 때는 완료율 하나만 봐서는 안 된다. 완료율 옆에 재작업률(다시 손본 비율)과 사람에게 넘긴 비율을 나란히 두어야, 그 성공률이 어려운 일을 피한 결과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이 세 벽 때문에, 순수한 성과 과금은 결과가 숫자로 딱 떨어지고 귀속이 분명하며 난이도가 고른, 아주 좁은 업무에서만 깔끔하게 작동한다. 현실의 업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과금 방식은 어느 회사에 유리한 싸움인지를 미리 정해 둔다. 앞서 본 각 방식의 압력이, 회사의 생김새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러 업무에 두루 쓰이는 큰 도구(메일·문서·협업 도구처럼 전 직원이 매일 여는 것)를 이미 가진 쪽은 좌석 과금이 편하다. 그들은 에이전트를 기존 좌석에 얹어 끼워 판다. 추가 비용 없이 번들로 들어오면, 특정 업무에 집중하는 신생 업체가 "저희 에이전트가 더 똑똑합니다"라고 말해도 구매자는 "굳이 따로 돈을 왜"라고 답하기 쉽다.
모델을 돌리는 기반을 직접 가진 회사는 처리 원가가 낮아, 사용량 단가를 낮춰도 버틴다. 이 싸움은 원가 경쟁으로 흐르고, 규모가 작은 쪽이 불리하다.
특정 업무를 깊이 아는 전문 업체는 성과로 차별화할 여지가 있다. 성과를 책임지려면 그 업무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고 어디서 틀어지며 무엇이 '끝'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넓게 깔린 범용 도구는 업무마다 다른 '끝'을 정의하기 어렵다. 좁고 깊은 쪽이 비로소 큰 쪽과 다른 자리에서 싸울 수 있는 셈이다.
세 방식에 각각 결함이 있으니, 실제 시장은 하나로 쏠리지 않고 섞인다. 지금 눈에 보이는 방향은 대략 이렇게 읽힌다. 이건 필자의 판단이지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바닥에는 작은 고정비를 깐다. 플랫폼을 유지하고 연결을 열어 두는 값이다. 고객에게 '최소한 이만큼은 예측 가능하다'는 안심을 준다. 그 위에 처리량이나 성과에 연동되는 변동비를 얹는다. 성과 부분은 앞서 본 세 벽 때문에, 측정과 귀속이 비교적 분명한 업무에 한정해 조심스럽게 붙인다. 성과 과금은 실패한 작업의 비용을 공급사가 떠안는 구조라, 제품이 아직 불안정한 초기 회사일수록 이 변동성이 치명적이다. 그래서 작은 고정비로 현금 흐름을 먼저 깔고, 측정이 또렷해진 업무부터 성과를 얹는 순서가 안전하다.
단위를 바꾸는 일 자체도 조심스럽다. 과금 단위를 바꾸는 건 사실상 계약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라, 재무 담당자가 먼저 반발한다. 그래서 보통은 기존 단위를 유지한 채 새 단위를 '선택지'로 먼저 얹고, 옮기려는 고객에게만 적용하며 데이터를 쌓은 뒤에 전면 전환을 검토한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경쟁의 질문도 바뀐다. 예전 질문은 "기능이 더 많은가, 더 싼가"였다. 바뀐 질문은 "이 회사가 자기 성과를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가, 그 숫자를 믿을 수 있는가"가 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장면 하나로 따라가 보자. 참고로 필자는 이런 에이전트를 만드는 쪽에 있고, 온틀은 업무에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의 에이전트를 붙이는 서비스다. 아래 사례는 실제 특정 고객의 계약이 아니라, 과금 설계가 제품의 정체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이려고 구성한 예다.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사가 있고, 거래처가 전화를 걸어 "다음 달 15일 납기를 10일로 당겨 달라"고 했다.
좌석 과금 세계라면, 이 요청은 담당자 화면에 알림으로 뜬다. 담당자가 직접 재고를 확인하고, 생산 일정을 들여다보고, 물류에 전화하고, 거래처에 회신한다. 소프트웨어는 이 과정을 보기 좋게 거들 뿐이다. 담당자 한 명이 붙어 있어야 일이 돌아가고, 공급사 매출은 그 담당자가 로그인하는 한 유지된다. 담당자가 얼마나 빨리, 틀리지 않게 끝냈는지는 과금과 상관이 없다.
같은 요청을 PM 에이전트가 받는다고 하자. 에이전트는 혼자 여러 단계를 밟는다. 당겨진 납기에 필요한 자재 재고가 있는지 조회하고, 생산 라인의 빈 슬롯을 일정과 대조하고, 당기면 뒤로 밀리는 다른 주문이 무엇인지 찾고, 배송에 걸리는 시간이 맞는지 확인한다. 그러고는 "10일 납기는 가능하나 B거래처 주문이 이틀 밀립니다. B에 양해를 구할지 결정해 주세요"라는 정리된 판단을 사람에게 올린다. 사람은 읽고 승인한다.
여기서 과금을 어떻게 걸지가 이 서비스의 정체를 드러낸다. 좌석당 받으면, 에이전트가 담당자의 두 시간을 5분으로 줄여 줄수록 고객은 좌석을 해지한다. 잘할수록 매출이 깎인다. 사용량으로 받으면, 복잡한 납기 조정일수록 청구가 튈까 봐 고객은 정작 복잡한 건에서 에이전트를 안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설계는 셋을 섞되, 그 비중을 분명히 하는 쪽이다. 서비스를 붙여 두는 기본값은 고정으로 받아 고객이 예산을 짜게 하고, 그 위에 '사람 승인만으로 닫힌 건의 수'를 핵심 지표로 삼아 변동을 얹는다. 성과로 세는 쪽을 택한 만큼, 측정의 벽을 우리가 먼저 떠안는다. '닫혔다'를 어느 시점으로 볼지—거래처의 수락 회신이 들어온 때로 볼지, 생산 일정에 반영까지 된 때로 볼지—를 계약 앞머리에 못 박고, 둘 중 뒤쪽(일정 반영)을 기준으로 잡아 느슨한 집계로 숫자가 부풀지 않게 한다. 그만큼 우리는 더 늦게, 더 적게 청구되는 부담을 감수한다.
승인 뒤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 승인했는데 막상 실행 단계에서 거래처가 말을 바꾸거나 자재가 펑크 나면, 그 건은 '닫힘'으로 세지 않고 에이전트가 재조정 절차를 다시 돈다. 재조정이 몇 번 돌았는지는 앞서 말한 재작업률로 따로 집계해, 우리가 어려운 건을 피하지 않았는지 고객이 확인할 수 있게 둔다. 이게 과금을 제품 설계보다 먼저 꺼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경쟁 분석은 파는 쪽만의 일이 아니다. 에이전트를 들이는 구매자도 과금 단위를 읽으면 공급사의 속을 가늠할 수 있다. 먼저 과금 단위가 자기 회사의 '성공'과 같은 방향을 보는지 확인하라. 사람을 덜 붙이려고 에이전트를 사는데 공급사는 사람이 많이 붙을수록 번다면, 둘은 언젠가 부딪힌다.
그다음, 제안서를 덮기 전에 다음 세 가지를 공급사에게 직접 물어 숫자로 받아 두는 게 좋다.
이 세 가지에 또렷이 답하지 못하는 성과 숫자는 마케팅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 정답인 과금 방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예산을 못 박아야 하는 조직엔 변동비 비중이 큰 제안이 통과되기 어렵고, 결과에 돈을 걸고 싶은 조직엔 순수 좌석 과금이 답답하다. 자기 조직의 결에 맞는 과금 구조를 가진 제품이, 그 조직에 맞는 제품이다.